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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 강한 북녘의 해설강사들
아영스
2005. 2. 1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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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동포들에게 설명할 때가 가장 신명납니다”
자부심 강한 북녘의 해설강사들
김기헌 기자 kh@minjog21.com
북의 유적지와 명소를 방문했을 때 꼭 만나게 되는 북녘의 여성 해설강사들. 구수한 말솜씨로 손님에게 하나라도 더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남쪽 방문객들이 많다. 자부심 강한 북녘의 해설강사들을 만나 보았다.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 뵙게돼 반갑습니다.”
“공화국에 자주 오시나 봅니다.”
“대학은 사적학과를 나오셨습니까?”
“저는 김철주사범대학에서 혁명역사를 전공했습니다.”
만경대 해설강사 한명실 씨.[사진/유수]
지난 2월 22일 평양 대동강의 쑥섬을 방문했을 때 만난 그곳의 해설강사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검은 치마, 하얀 저고리, 호리호리한 체격 등 전형적인 북의 사적지 해설강사의 모습이다. 쑥섬은 50년 전인 1948년 4월 김구·김규식 선생이 남북협상 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하루 휴식했던 곳으로 당시 사용했던 배와 오두막 등의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날 해설강사는 유난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등 남쪽의 원로 역사학자들이 대거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문가답게 유적 하나하나를 낭랑한 목소리로 빠짐없이 소개한다.
“자주 오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하는 그의 얼굴에는 평양의 미소가 담겨 있었다.
북을 방문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참관(방문)하게 된다.
방문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고향집, 주체사상탑, 개선문, 모란봉 을밀대 등 평양의 명소와 유적지들이 두루 망라된다.
전문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육성
남쪽의 방문단체나 방문객들이 오기 전 북측의 초청기관에서는 방문자의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해 방문기간 참관할 곳과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주도면밀하게 짜놓는다. 이런 일을 북에서는 ‘조직사업’이라고 한다. 따라서 참관지에 도착하면 사전에 연락을 받은 해설강사, 관리인들이 나와 빈틈없이 안내한다.
남쪽에서 간 방문객들은 가끔 “이런 곳이 유명하다는데 방문하고 싶다”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북측의 안내원들은 가장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사전에 ‘조직사업’이 안 된 곳은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북측의 한 안내원은 “한번은 남쪽에서 온 분들이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해 학생들의 예술공연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소년궁전에 연락해 봤더니 방학 중이라 공연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설명해도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할 때는 할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남과 북의 ‘다름’을 보여주는 한 사례인지도 모르겠다.
평양 개선문 해설강사 홍현희(24) 씨.[사진/유수]
북을 방문하면 어느 곳에서나 관광지와 유적지를 안내, 해설해주는 해설강사들을 만나게 된다. 해설강사는 남쪽식으로 표현하자면 ‘관광안내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북측에서 해설강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남쪽에서 대학을 나온 전문 관광안내원들이 늘어나듯이 북쪽에서도 해설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해설강사들은 사적지와 유적지를 방문하는 북 주민들과 외부 참관객들에게 꼼꼼히 관련 역사적 사실과 내용을 설명해 준다. 그 만큼 이들의 사회적 대우도 매우 높은 편이다. 생활비와 승진은 직능과 급수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배치되면 5급이고, 1급까지 급수가 올라간다.
보통 김일성종합대학의 역사학부 사적학과나 철학부 졸업생, 사범대학의 역사학부 졸업생 등이 배치된다.
해설강사가 활동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통상 외부의 방문객들은 주로 사적지에 근무하는 해설강사들만을 만날 수 있지만 북 내부의 직업총동맹·여성동맹·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등 각 기관별, 직능별 조직에도 많은 해설강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남쪽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만수대의사당에도 해설강사가 있다. 이곳의 해설강사 리연주 씨는 각 국의 고위인사들을 상대로 의사당의 설립연도 등 건물 내력을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단체에 소속된 해설강사들은 2~3년에 한 번씩 평양서 각 단체별로 모임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각 지에서 모인 해설강사들이 경험발표회도 갖는다. 한 해 동안 농민이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육과 당정책 선전을 펼친 교육 경험과 성과를 결산하는 모임이다.
조직에 소속된 해설강사들은 주로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사업이 최우선 임무다. 한마디로 조선로동당의 정책이나 국가적 사업내용을 대중이 알기 쉽게 강의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어떻게 하면 조직원들이 지루하고 짜증나지 않게 구수한 말솜씨로 강의를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한다. 북 당국은 해설강사들에게 “격식과 틀이 없이 구수한 말솜씨로 간편하고 알기 쉽게 강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강의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격식과 틀이 없이 구수한 말솜씨로 쉽게 강의
묘향산 보현사 해설강사.[사진/유수]
이런 점에서 묘향산 보현사의 ‘아줌마 해설강사’(아쉽게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북의 ‘모범강사’라 할만했다. 그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절의 내력과 서산대사와 관련된 일화 등을 구수한 입담으로 방문객들의 박수를 유도해 냈다.
만경대의 한명실 씨도 남쪽 방문객들에게는 낯익은 해설강사다. 2월에 만경대를 방문했을 때는 이곳의 막내 해설강사인 문명희(23) 씨를 비롯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공훈 해설강사 등이 나와 방문객을 맞이했다. 코트를 입고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는 한명실 해설강사의 목소리는 근엄한 여선생님의 인상을 준다. “건강해 보이십니다”라며 인사를 건네자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오래 동안 이곳에 근무해서 그런지 악수를 청하며 인사하는 남쪽 손님들이 많았다. 한 씨는 1998년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 소설가 김주영 씨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해설을 맡았던 베테랑 해설강사다.
최근 북에서 유명해진 해설강사 부부가 있다. 몇해 전 관광명소로 개발된 평안남도 송암동굴 관리소 해설강사 김명옥 씨 부부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이곳을 현지지도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혼상’을 보낸 이후 전국적으로 화제의 인물이 됐다. 김 씨 부부가 결혼상을 받은 이유는 “조국의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인민들이 향유하게 하며 송암동굴을 발굴 정리하는 사업에 자기의 순결한 마음을 다 바쳐 일했기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이 유명인사나 고령자들에게 종종 ‘생일상’을 보내기는 하지만 첫 가정을 이루는 젊은이들에게 결혼상을 선물한 사례는 지난해 3월 21일 ‘마라톤 영웅’ 정성옥 부부에게 준 것이 유일하다. 그만큼 이례적이고 화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남편 김정남 씨는 3년전 제대한 뒤 송암동굴 건설대 부소대장으로 일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은 동굴개발 사업을 끝내고 김 위원장을 초청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다짐했고 김 씨 부부와 군 건설자들의 노력 속에 송암동굴은 마침내 새로운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이들의 사연을 듣고 김 위원장이 결혼상을 보낸 것이다.
한편, 항상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해설강사들에게는 어려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남쪽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의 해설강사는 다른 강사보다 훨씬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혁명열사릉에는 항일빨치산 131기의 묘가 있는데, 이곳의 해설강사 김영옥 씨는 일일이 이들의 경력과 활동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남보다 훨씬 많은 학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항일빨치산들의 묘가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에 나눠져 있는데,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김 씨는 “혁명열사릉에 묻혀 있는 항일열사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관으로 활동했던 분들이고, 일반 대원들은 애국열사릉에 안장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애국열사릉의 해설강사 백광옥(38)씨는 더 학습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애국열사릉에는 500기가 넘는 인물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에게 대해 일일이 설명하려면 굉장히 힘들겠습니다”라고 하자 활발한 성격의 백 씨는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지만 항상 학습을 하고 경험이 쌓이면 일 없다(괜찮다)”며 “힘들기보다는 이분들의 업적을 인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남쪽에서 오신 동포들에게 설명할 때가 가장 신명이 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직무에 자부심이 강한 당찬 여성들
백두산 밀영 귀틀집 앞의 해설강사들.[사진/유수]
근무환경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해설강사들도 있다. 이점에서는 아마도 백두산에 근무하는 해설강사들이 가장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이들은 불과 두 발짝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와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악천후 속에서도, 흰눈을 동반한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도 백두산을 찾은 손님을 위해 백두산의 명소들에 대한 안내와 해설을 해주어야 한다.
이곳에 상주하는 리희옥 씨를 비롯한 5명의 해설강사는 보이는 것이라곤 바람과 구름과 안개뿐인 백두산정의 외로운 막사에 상주하면서 백두산을 찾아오는 탐승객들에게 해설을 들려주고 있다.
1998년 이곳을 방문했던 소설가 김주영 씨는 “그녀를 백두산에서 삼지연까지 사뭇 뒤따라 다니며 예민하게 관찰했지만,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황량하고 고적한 근무환경에 대해 회의나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징조를 발견할 수 없었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만큼 해설강사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도 많고, 이들은 자신의 직무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해설강사들은 개성의 왕건릉, 공민왕릉처럼 관리원이 해설원을 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여성이다. 예외가 있다면 북이 자랑하는 여성전용 산부인과병원인 평양산원의 안내해설자는 공교롭게도 남성이다.
역사유적지와 명소들에 근무하는 해설강사들을 통해 북의 여성들이 이북 사회의 중심축에 어느 계층보다 완강하게 뿌리박고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또한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북 여성들의 적극적이고 당찬 성격이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남쪽 방문객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해설 내용의 다양성 부족이다. 북쪽 주민들의 경우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해설강사들의 설명이 남쪽 사람들에게는 내용과 관심에서 다소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한 역사학자는 “유적지 설명에 너무 일방적인 내용이 많아 진지하게 듣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며 “대상에 맞는 다양한 내용과 설명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에 오실 때는 함께 찍은 사진을 꼭 가지고 오세요”라며 환하게 웃던 한 해설강사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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