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0, 2018
북녘경제 읽기 협동농장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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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경제 읽기 협동농장
아영스
2005. 2. 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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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한 만큼 소득 증가, '실리' 바람 분다
북녘경제 읽기 협동농장
민족21 minjog21@minjog21.com
북녘 농민이 대부분 소속돼 있는 협동농장은 토지와 기타 생산수단을 통합하고 농민들의 공동 노동에 기초해 농업생산을 하는 집단농장을 말한다. 분조관리제 강화, 정보농업 도입, 다각 영농 모색 등 최근 변화하고 있는 협동농장을 살펴보자.
'거름 나간 길로 쌀이 온다.'
지난 2월 26일 오전 평안남도 강서군 삼묘리 협동농장을 찾았을 때 한창 퇴비증산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농장 입구에는 각 작업반별로 거름생산량을 그래프로 표시한 '퇴비반출 사회주의경쟁도표' 가 그려져 있고, 각종 구호가 새겨진 대형 선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협동농장은 14개의 농사작업반, 2개의 남새(야채)작업반, 2개의 과수작업반, 2개의 잠업반, 1개의 축산반 등 21개의 작업반으로 구성돼 있다. 작업반 아래에는 3~4개의 분조로 다시 나눠져 있다.
북측의 안내원은 "가족단위로 분조가 구성되고, 분조 단위로 실적 분배가 이뤄지면서 생산력이 많이 늘었다" 고 말했다.
가족단위 분조관리제, 영농 다각화 모색
1996년 북은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자극해 농업생산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분조관리제를 도입했다. 먼저 작업반 아래 조직돼 있는 분조의 규모를 이전의 10~25명에서 7~8명으로 줄이고, 분조별로 실적 분배를 하는 '분조 우대제' 를 실시했다. 또 분조 단위의 생산계획은 농민들이 정상적으로 영농을 추진하면 초과 달성할 수 있게끔 낮게 설정했다. 특히 초과 생산 몫에 대해서는 분조 성원들이 직접 나누거나 팔거나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침체와 주변 여건으로 새로운 분조관리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2002년 7월 사회주의경제관리 개선조치(이하 7. 1조치)가 단행되면서 비로소 정착되기 시작했다. 7. 1조치 이후 생산물의 25%를 국가에 사용료로 낸 나머지를 협동농장에서 독자적인 계획과 분조 단위의 실적분배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자율성이 강화됐고, 초과 생산물을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7. 1조치 이전에도 각 협동농장마다 1년 간 총생산량에서 국가 납부금과 생산비 등을 공제한 후 생산실적에 따라 작업반 별로 연말에 몫을 배분해왔으나 분조에 대해서는 '평균주의 원칙' 을 견지했었다.
7. 1조치에 따라 '일한 만큼, 벌어들인 만큼 분배한다' 는 사회주의 분배원칙이 정착돼 연말 결산분배에서 최하위 단위인 분조도 생산 실적에 따라 분배를 받게 됐으며 분조 간에도 분배 몫에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산분배 방법이 바뀌면서 생산의욕이 증진되고 생산품의 질을 높이려는 의식이 크게 높아졌다. 농민들은 국가에 납부하는 토지사용료와 물, 전기, 비료, 농약과 지원노력 등 각종 생산비용을 줄여 분배 몫을 늘리기 위해 애쓰게 됐다.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협동농장의 경우 과거 총 수입의 50%를 토지사용료와 생산비용으로 국가에 납부했으나 2003년에는 중학생(남쪽의 중고생에 해당)들의 노력지원은 받지 않고 대학생들만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일손은 농장 내 작업반의 공동노력으로 대체, 상당액의 인건비를 줄였다고 한다. 이 농장의 경우 2003년 결산분배에서 분조원 1명당 평균 6만 원(북쪽 원)의 현금을 받았으며 최고 분배 금액은 12만 원이었다. 특히 7. 1조치 이후 국가에서 채소와 같은 생산품을 질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눠 수매하면서 농민들이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품질 제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규모가 큰평안북도운하협동농장(1220정보,1정보=1ha=3000평)의 경우도 2003년 1인당 5만 원, 가구당 1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렸다. 이 농장의 경우 벼 재배면적 1041정보를 뺀 176정보에 담배와 과일, 옥수수를 심고, 누에를 치고 있으며, 나머지 3정보에는 물고기를 비롯해 염소와 돼지 등 가축을 길러 소득을 높이고 있다. 북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2000원 정도임을 감안할 때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평안도와 황해도 등 곡창지대보다 함경도, 강원도 등 산악지대가 많은 곳은 다소 소득이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협동농장들이 전통적인 식량 재배에서 특용작물을 심는 등 영농을 다각화하는 것은 농장의 운영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농자재는 농업성와 도 농촌경리위원회 산하에 설치한 자재상사, 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자재공급소와 같은 전문 자재공급기관에서 공급했으나 이제는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와의 회견(2004. 4. 1)에서 운하협동농장의 전경선 관리위원장은 "농사에서 필요한 비료와 설비들은 자체로 해결한다" 며 "이에 필요한 자금은 들깨와 담배 등 기호품을 생산해 그것을 판매해 얻는다" 고 말했다. 과거 농사에 필요한 물과 비료, 영농기구 등이 '공짜나 같은 가격'이 아니라 적절한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협동농장들은 자체적으로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협동농장들은 생산된 식량이나 특용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이 수익으로 '물자교류시장' 에서 농자재를 구입하게 됐다. 청산협동농장 관리위원회 최영호 부위원장은 위 신문과의 회견에서 "토지사용료를 내는 것만큼 농장원들은 과거 조건이 좋지 않아 농사를 단념했던 토지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궁리를 하게 됐다" 라며 "경제관리의 개선이 확실히 농산물의 증산에 기여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58년 농업협동화 완료, 생활공동체 방식 운영
북은 1953년 8월 농업협동화 방침을 채택하고 농민들을 자연부락단위의 '협동조합' 에 편입시키기 시작해 1958년 8월까지 마무리했다. 농민 개인이 토지를 갖는 것이 아니라 협동농장이 토지를 소유하는 '사회주의적 소유'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그 후 자연부락 단위의 협동조합은 리 단위로 확대. 통합되었으며, 1962년 협동농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북에는 약 3000여 개의 협동농장이 있으며 총경지면적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국영농장 소유다. 북 농민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17%에 해당한다.
협동농장에는 148만 가구에 600여만 명이 소속돼 있고, 농장당 평균 350~450가구가 포함돼 있다. 농장 당 평균 부양가족의 수는 평균 1900~2000명 선이고 각 협동농장의 조합원수는 평균 700~900명이다. 보통 경지면적으로는 500정보 내외이다. 협동농장 내에는 농사. 축산. 과수. 남새반 등 15~20개의 작업반이 있고, 작업반 아래에 7~15명으로 분조가 조직돼 농사를 짓는다.
북 협동농장의 특징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완전한 생활공동체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리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을 겸임해 행정단위와 생산단위가 결합돼 있다. 또 협동농장은 과거 협동조합 내에 존재하던 소비조합 및 신용조합 등 모든 농민단체를 통합해 협동농장에 생산 및 소비에 대한 포괄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협동농장은 교육, 문화, 후생을 포함한 구역 내 모든 경제생활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해 모든 생산, 분배, 소비가 단일계획에 따라 수행된다. 협동농장별로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가 따로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동농장의 운영은 관리위원장이 도 농촌경리위원회와 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지도를 받아 이뤄진다. 협동농장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은 농장의 모든 구성원으로 조직되는 농장원총회이다. 대표자회의라고도 하며 1년에 4번 개최된다. 농장원 총회에서 토의 의결한 사항은 모든 농장원과 관리위원회 지도자들이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 관리위원회는 협동농장의 전반적 관리운영을 총회를 대신해 수행하는 기관으로 리 당위원회의 지도에 따라 농장의 경영활동과 생산활동을 조직하고 집행한다.
협동농장에서 생산은 통상 자연부락단위로 조직된 작업반에서 이뤄진다. 작업반은 직접생산과 노동력을 조직하며 협동농장원의 집단생활과 공동노동을 조직, 진행한다. 1개의 작업반의 규모는 평균 70~80명 정도를 기본으로 하며 100명을 넘는 경우도 있다. 농산작업반의 경우 농장의 크기, 생산기계 및 장비 수준에 따라 70~120정보 정보로 돼 있고, 산간지대는 40~60정보로 조직돼 있다. 작물별로는 채소작업반은 20~30정보, 과수작업반은 40정보, 뽕밭작업반은 40정보를 기준으로 운영된다. 작업반에는 농업생산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농장원의 생활과 관련된 주택보수사업반이 있고, 이밖에 수산작업반, 조립작업반, 편의작업반, 기계화작업반 등의 다양한 작업반이 일의 종류에 따라 조직돼 있다. 작업반은 분조제로 운영되는데 생산공정의 특성에 맞춰 부문별로 전문화돼 있다. 농산분조의 경우 작물별로 논분조, 밭분조, 담배분조, 채소분조, 잠업분조, 수산분조, 트랙터분조, 농기구수리분조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농업구조 개선, 과학영농 전국 확산 예정
최근 북은 농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과학영농을 도입해 농업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3년 북은 황해남도 재령군, 안악군 등 4개 군을 '정보화 농업' 시범 농장으로 지정해 토양과 기후조건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이를 토대로 모내기 시기와 심을 모의 양을 조절하는 등 생산과 과학기술이 결합된 과학영농을 실험하고, 올해부터는 이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또 고랭지 지역인 량강도와 함경북도 지역까지 '두벌농사'(이모작)를 하기 시작했고, 자강도 장강읍협동농장의 경우 '세벌농사'(3모작)까지 하고 있다.
특히 7. 1조치 이후 농민들의 생산의욕이 크게 높아졌다. 56년 동안 유지돼 온 '이중곡가제'(二重穀價制)가 폐지돼 생산한 만큼 분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국가가 농민들로부터 쌀 1kg을 80전에 구입해 8전에 근로자들에게 공급함에 따라 정부의 재정부담이 막중했으나 7. 1조치 이후 쌀 수매가격을 1kg당 40원으로 크게 올렸다.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에는 식량생산을 늘려도 워낙 수매가격이 싸 증산에 대한 소득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곡물의 수매가격이 크게 오르고, 생산된 곡물의 국가수매량이 줄어 농민들이 분배받는 양이 많아지면서 생산한 만큼 농민의 소득이 늘어나게 됐다. 수매가보다 비싼 가격이 형성돼 있는 시장에 곡물을 팔아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농민들의 의식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정부가 과학영농을 강조하더라도 그것이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한다면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이제는 곡물생산의 증산이 소득으로 이어지는 조건이 됐기 때문에 협동농장이나 농민들이 정부의 과학영농정책을 수용하고, 토양에 맞는 작물을 선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셈이다. "정부나 협동농장에서 마련된 '생산계획' 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더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를 고민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7. 1조치가 시행된 첫 해인 2002년 말 청산리를 비롯한 협동농장에서 정보당 67톤의 벼를 생산하던 논에서 100톤 이상을 생산해 10만 원 수준의 분배를 받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나 2003년 식량생산이 지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 등은 북의 농업구조 개선 작업이 일정하게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평안도와 황해도의 몇몇 협동농장에서 거둔 성과를 어떻게 전국의 협동농장으로 확산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이것의 성공여부가 북의 식량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정창현(40) 국민대 겸임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물로 본 북한현대사》 등 여러 저작이 있다.
반원의 이름을 써 놓은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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