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0, 2018
어떻게 살고 있을까|협동농장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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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고 있을까|협동농장
아영스
2005. 2. 1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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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벌농사·감자혁명으로 식량난 해결 모색”
어떻게 살고 있을까|협동농장
강은지 기자 happy@minjog21.com
개천절 남북공동행사를 맞아 기자가 평양을 찾았던 10월 초, 북녘의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올 여름 북녘은 태풍 매미의 피해는 적었지만 일조량이 시원치 않아 벼이삭이 그렇게 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북녘의 농촌 풍경,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북녘에서 농업활동은 알려진 것처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이루진다.
협동농장의 농장원은 보통 500∼600명 정도인데 많은 곳은 1000명에 이르기도 하며 리(마을) 하나가 하나의 협동농장을 구성하기도 한다.
협동농장과 조금 다른 것으로 국영농장도 있다.
리협동농장이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소속이라면 국영농장은 도농촌경리위원회가 관리하며 도 전체의 농업에 관련된 일을 맡는다. 1개 농장은 5∼8개의 마을로 나뉘어져 그 마을을 중심으로 작업반이 구성되어 있고 각 작업반은 다시 7∼8개의 분조로 나뉜다.
이 1개의 분조가 농사짓는 땅 넓이는 보통 10정보(1정보는 3000평)가 넘기 때문에 1개 작업반은 분조의 수에 따라 대개 50정보에서 많게는 100정보를 맡아서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협동농장이 리와 같은 하나의 행정단위를 이루기 때문에 각각의 협동농장 내에는 리분주소, 출판물보급소, 리진료소, 이발소, 미용실, 수리점과 같은 편의봉사실, 기계화작업반, 보수반, 철공소, 상점 등이 갖춰져 있다.
협동농장 내에 있는 기계화작업반은 그 인원이 20명 정도로 농지 정리를 할 수 있는 기계를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철공반에서는 농기계를 자체 생산하고 보수반에서는 협동농장 내 인민들의 집을 짓기도 하고 기계도 수리하고 둑 보수 작업도 알아서 한다.
이처럼 하나의 협동농장은 인민들의 필요를 대부분 자체 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자체적으로 하나의 행정단위 이루는 협동농장
올 2월 개성 근교 농촌의 풍경.
[유수 기자]
한 마을 단위, 약 100명으로 구성되는 작업반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계화작업반, 철공반, 보수반, 돼지, 양, 염소 등을 키우는 축산반, 채소를 기르는 남새반 등도 있지만 주로는 벼, 강냉이, 감자 농사를 짓는 농산반을 가리킨다.
각의 작업반에는 반장, 기술원, 통계원이 있다. 반장은 그 작업반의 생산을 담당하고 통계원은 생산량이나 개인의 로동량만이 아니라 생활도 공수(점수)를 매겨 통계를 낸다.
다시 말해 1개 농장의 총 생산 책임자는 리관리위원장과 기사장이며 농장의 생산담당 대표인 리관리위원장 밑으로 관리부위원장, 작업반장, 분조장의 순서로 이어지고 관리부위원장과 같은 급인 기사장은 그 밑의 기술원들과 함께 농장의 기술을 총지도하는 것이다.
농장원의 하루생활은 일반 로동자의 생활과 거의 비슷하다. 보통 분조별로 작업반 선전실에 모여서 작업지령을 받고 조회를 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데 한 여름 새벽부터 김매기를 할 때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 없이 바로 작업터로 가서 일을 한다.
전 농장원이 쉬는 농민의 날은 3월 5일, 그리고 로동자들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데 반해 농민들은 10일 간격으로 1일, 11일, 21일에 쉬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농민시장도 농민들이 쉬는 날인 매 1일에 열렸다.
한편 농민들의 조직으로는 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이 있다. 1964년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열린 조선로동당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가 발표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같은 해 6월 조선로동당 제4기 9차 전원회의에서 농업근로자동맹을 조직할 것을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라 각 군 단위로 농근맹 조직위원회를 편성해 모든 협동농장원은 물론, 농장과 관련있는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입하게 했다. 이에 따라 농근맹에는 협동농장, 국영농장, 국영목장, 군 협동농장 경영위원회, 관개관리소, 농기계제작소, 농기구공장, 자재공급소, 가축위생방역소 등의 노동자, 사무원까지 가입되어 있다.
1965년 3월 25일 평양대극장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한 농근맹은 조선로동당의 외곽단체로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행하고 당과 농업부문의 노동자, 사무원을 연결시키는 인전대 역할을 한다.
맹원수는 창설 당시 230만 명에 이르렀고 지난 1979년에는 약 3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된 바 있으나 1993년 11월 현재 맹원수는 약 130만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초 북은 식량문제 해결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이의 실현을 위해 농업부문 선진기술 도입, 토지정리, 두벌농사, 종자혁명과 감자농사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북은 해당 지역의 과거 품종배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각 지방의 토양성분과 기후조건에 가장 알맞으면서도 수확고가 높은 여러 가지 품종들을 적절히 배합하는 적지적작(適地適作), 적기적작(適期適作)의 원칙에 따라 품종을 선택하도록 지도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지도사업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지학습반이다. 현지학습반은 현장에서 로동자를 대상으로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북의 독특한 교육형태다.
대표적인 예가 1973년부터 30년간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 평양, 함경남도, 개성 등지에 116개의 현지학습반을 운영해온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으로 이 대학은 올해에만도 22개의 현지학습반을 조직하고 630여 명의 농업근로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정보농업으로 생산량 늘려
담배를 수확하고 있는 농민들.
이와 함께 농업기계화연구소와 평양농업대학 등에서는 물거름 주는 기계, 무 뽑는 기계, 보습, 써레, 씨뿌림 장치가 장착돼 있어 써레질과 씨뿌리기 등을 단번에 진행할 수 있어 두벌농사에 적합한 농기계인 종합토양관리기계 등 창의적이고 실리적인 새 농기계를 개발 보급하는데 힘쓰고 있다.
지난 2000년 말부터 농업과학원의 지원을 받아 량강도의 대홍단군, 백암군, 삼지연군 등에 무바이러스 씨감자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감자조직배양공장을 잇달아 건설하는 등 감자농사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백암군에는 올해 들어서만 60여 종 5000여 점의 트랙터 부속품과 40여 종 4만여 점의 각종 영농자재가 전달되는 등 백암군 감자농사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또 북녘에서는 추위에 강하고 생육기일이 짧으면서도 소출이 비교적 높은 밀, 보리의 특성을 이용해 매년 봄과 가을에 두벌농사(이모작 영농)를 하고 있으며 두벌농사 면적을 더욱 확대해 곡물증산에 힘을 쏟고 있다.
북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올해 초 “당의 두벌농사 방침은 우리나라에서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완전히 풀 수 있게 하는 가장 정당한 방침”이라며 “두벌농사를 하는 것은 새 땅을 얻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북녘의 대표적인 평양지대인 황해남도 연백평야에서는 지난해 가을에 3000 정보의 밀, 보리 농사를 지은 데 이어 올 봄에도 최고 수준의 면적에 밀과 보리를 심어 많은 수확을 냈다고 한다.
한편 북은 2007년까지 식량 생산량을 800만 t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농업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북은 시범적으로 안악, 은천, 재령, 신천군 등 황해남도 4개 군에 컴퓨터를 이용해 모내기를 하는 등 정보농업을 도입했다.
북이 말하는 정보농업의 대책은 작물배치 개선, 품종배치 개선, 영농공정 개선, 토양에 맞는 두벌농사, 화학비료의 효율적 이용, 지력 제고, 농촌 과학기술보급체계 확립, 생산계획 수정 통한 농민 노동의욕 제고 등 8가지다.
이를 위해 농업과학원 컴퓨터 분야를 비롯한 대학, 연구기관 과학자들과 생태환경보호부문, 산림부문, 국토계획부문의 전문가 30여 명이 집결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북은 쌀과 옥수수 위주의 영농에서 벗어나 감자, 고구마, 콩 등 생산성 높은 작물의 경작을 적극 권장, 재배작물의 다양화를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토질, 기후 등 영농 요인에 대한 분석작업을 시작했다.
이 ‘정보농업’을 위해 북은 벌써 지력과 기후조건을 입력하면 볍씨의 파종날짜와 모내는 시기를 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기르기 프로그램 ‘봄노을’과 언제 얼마나 수확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농작물생육 예보프로그램 ‘포전길’을 개발했다.
각 지방별로 특수식물 재배단지를 조성해 그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생산하는 것도 북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농업 정책의 하나다.
황주군 초물 단지, 통천군 조피나무 단지, 옹진군 귤나무 단지, 사리원 포도나무 단지, 김형권군 사과나무 단지, 백두산 일대의 들쭉나무 단지 등 북 전역에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비교적 규모가 큰 특수식물 재배단지가 약 10여 곳에 조성돼 있다.
가을과 겨울철 시민들에게 군고구마를 판매하기 위해 평양시 강남, 강동, 상원군과 사동, 력포구역 등의 협동농장에서 고구마 경작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토지정리, 관개수로 개설로 농업 활성화
이와 함께 최근 북은 전역에서 토지정리와 새 농촌마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1998년 9월 강원도를 시작으로 1999년 평안북도, 2000년 황해남도에서 각각 토지정리 사업을 완료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는 평양시, 남포시, 평안남도 토지정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평양시, 남포시, 평안남도에서 정리할 토지는 총 9만 정보에 이른다. 이미 황해남도는 2000년 10월부터 1, 2단계에 걸쳐 작은 규모의 논과 밭을 대규모로 규격화하는 토지정리사업을 전개해 1년 6개월만에 모두 10만 정보의 농경지를 새로 조성했으며 55∼60가구의 주택이 들어선 130여 개의 새 농촌마을을 세웠다.
최근 농촌에 새로 지어진 문화주택들.
북은 농경지를 정리하면서 논, 밭이나 도로 주변의 낡은 집들을 없애고 산기슭에 농촌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농촌지역에 새로 건설, 공급된 주택만 해도 11만 3600여 채라고 한다.
이 같은 조치는 농촌 주택단지의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농경지 곳곳에 있는 주택을 없앰으로써 토지정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경지면적을 확충하려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
토지정리 사업이 완료되면 새 농지에 대한 땅심높이기 작업에들어간다. 이 작업은 농업과학원 토양학연구소에서 맡고 있다. 연구소는 토지정리를 마친 각 지역의 토양을 채취해 질소, 인, 칼륨 등의 함량을 분석하고 이를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해 이 자료를 토대로 비료 양과 물대기 등을 조절하고 있다.
토지정리 사업과 함께 다양한 인공수로 건설 및 관개시설 개선도 농업 활성화를 위해 북에서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이다.
지난 4월에는 평안남도 개천시 대각리에서 순천시 등을 거쳐 남포시 강서구역의 태성호를 잇는 총 연장 150여 km의 자연흐름식 물길인 개천-태성호 인공수로를 개통했다. 이로 인해 서해 곡창 10만 정보의 논밭에 풍부한 농업용수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1월에는 황해남도 강령간석지 제방저수공사가 완공돼 관개용수로 이용할 수 없었던 저수지의 물을 강령-옹진 지구의 1만 1000여 정보의 논밭에 원만하게 대줄 수 있게 됐으며 동시에 1000여 정보의 새로운 땅을 확보했다.
또 평안북도 관개용수 확보를 위한 백마-철길 물길도 건설 중인데 이 물길이 완공되면 수만㎾h의 전력과 많은 양수설비를 쓰지 않고도 평안북도 내 4만6000여 정보의 농경지에 물을 충분히 댈 수 있어 농업생산을 더욱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7·1경제조치 이후 높아진 농업 생산량
북에서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 체제로의 과도기에 발생하는 사회주의적 소유의 한 형태, 다시 말해 사적 소유로부터 전인민적 소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소유형태를 ‘협동적 소유’로 보고 있다. 이 협동적 소유의 대표적인 분야가 농업이며 협동농장이 그 전형적인 모델이다.
이렇게 협동농장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지난해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시행된 이후 각 협동농장에서도 생산량과 결산분배 등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에 쌀 1kg을 80전에 수매, 8전에 판매하던 것을 7·1경제조치 이후 40원에 수매해 44원에 판매하는 등 쌀 수매가격을 대폭 높여 농민들에게 많은 분배몫이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농장원들의 노력과 열의가 높아진 점이다.
이에 따라 협동농장 생산실적과 분배량이 크게 늘어났다. 생활비 및 가격의 조정이 이뤄지고 일한 만큼 분배받게 되자 가족 단위로 30만원 이상의 돈을 받는 농장원들도 나오게 됐다고 한다.
2001년 10월 금강산 농민대회에 참가한 북쪽 농민이 태평소를 불고 있다.
[유수 기자]
부업 차원에서 한때 유행했던 텃밭 경작도 줄어들었다. 과거 15명 내외이던 농업생산의 최소단위인 분조 규모도 7∼8명 단위로 축소되고 가족단위 분조를 도입했으며 생산물의 70%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지역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올해 북의 2003년도 양곡회계연도(2002.11∼2003.10) 식량수요량은 632만 t(남측 통일부 추산)에 이르고 있으나 확보가능한 식량은 489만 t에 불과해 143만 t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하지만 북은 다양한 농사기술 혁신과 농업구조개선 노력으로 식량난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 아래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200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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