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0, 2018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무번째 이야기 : 직장생활 : 네이버 블로그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무번째 이야기 : 직장생활 : 네이버 블로그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무번째 이야기 : 직장생활

아영스

2005. 7. 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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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무번째 이야기 : 직장생활

겨레하나 2005-05-14 조회수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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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연재 19회 보기





평양 노동자들이 5.1절을 맞아 줄다리기 대회를 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졸업할 때가 되면 '취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북에서도 직장은 사회생활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북녘의 직장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먼저 직장생활의 시작부터 알아보자. 남쪽이 수십 개의 회사에 원서를 넣어가며 개인적으로 경쟁을 거쳐 직장을 구하는 취업 경쟁 사회라면 북쪽은 대체로 직장을 배치받는 개념이다.
물론, 개인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직장이 배치되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더 받을수록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진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에 배치될 경우 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괄로 무리(집단) 배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쪽의 양대 노총과 북쪽의 직맹


최근 북녘의 노동자들은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생산성 높이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학교 생활, 군대 생활과 마찬가지로 북녘의 직장에서도 조직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1962년 전만 해도 공장, 기업소에서 지배인 유일관리 체계를 택했지만 이후 대안의 사업체계가 마련되면서 직장 안 조직생활은 더욱 중요해졌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1961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평안남도 대안시에 있는 '대안전기공장' 현지지도 때 내린 지시가 교시화된 것으로 1962년부터 북의 전 공장, 기업소가 채택하고 있는 사회주의 기업관리체계다. 대안의 사업체계에 따라 북녘의 모든 공장, 기업소에는 당 위원회가 설치되고, 당 위원회의 집체적 토의와 지도에 각 생산라인이 따르도록 되어 있다.
북녘의 생산체계는 작업반→직장→분공장→공장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 공장·기업소가 여러 개 묶여 연합기업소가 구성된다. 분공장은 자체적으로 1개의 상품을 만들어 공장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도 하고 근로자들의 생필품 같은 것을 만들어 공급하기도 한다. 또 공장 생산물의 중요부분을 담당하기도 한다. 분공장 바로 아래 단위로 여러 개의 직장이 있고 직장은 다시 4, 5개의 작업반으로 나뉜다. 보통 작업반이 25~30명 정도, 직장이 100여 명, 분공장이 200~300명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생산체계가 대안의 사업체계에 따라 당조직으로 이어지는데 먼저 당조직의 가장 기본인 당세포가 작업반에서 만들어진다. 이렇게 작업반의 세포위원회, 직장의 부문당위원회, 분공장의 분초급당위원회, 공장의 초급당위원회로 구성되며 이 초급당이 그 공장의 가장 높은 지도계층이 된다. 연합기업소의 경우에는 연합당위원회가 제일 높다.


남의 양대노총과 북의 직총이 2004년 노동절을 맞아 남북노동자5.1절통일대회를 개최했었다.
만 14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청년·학생·군인·직장인 등 모든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청년동맹과 이 당 위원회 외에도 직장 내에 조직되어 있는 정치조직으로는 조선직업총동맹(직맹),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 등이 있다. 이중 남북 노동자 교류에서 남쪽의 양대 노총과 교류하는 상대로 북녘의 노동자 단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직맹(위원장 렴순길)이다.
직맹은 여맹, 농근맹 등에 가입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30세 이상의 모든 노동자·기술자·사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이다. 1945년 11월 30일 북조선직업총동맹이란 명칭으로 처음 결성됐으며, 현재 가맹원은 약 160만 명 정도다. 현재 직맹의 중앙기구는 위원장과 부위원장(10명 내외) 밑에 조직부, 선전선동부, 군중문화부, 국제부, 재정부기부, 부녀부, 노임부, 문화부, 노동보호부 등 9개 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건설·임업로동자, 경공업로동자, 광업 및 동력로동자, 교육문화일꾼, 금속기계공업로동자, 상업일꾼, 운수 및 수산로동자, 합금기계공업로동자, 화학공업로동자 직업동맹 등 9개의 산업별 직업동맹으로 구성되며 도 및 시·군 직맹위원회를 하부 조직으로 두고 있다. 한편 북에서는 직장생활을 이야기할 때 농민과 노동자를 굳이 따로 구분하지 않고 협동농장 등을 기업소, 공장과 동일한 단위로 여기지만 농업 관련 종사자들의 조직은 따로 있다. 남북 농민 교류 때 북측 상대로 나오는 농업근로자동맹이 바로 그 조직이다.


남과 북 농민들의 교류도 활발하다. 사진은 2004년 개최된 남북농민통일대회 모습.
농근맹은 1964년 2월 25~27일 열린 조선로동당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가 발표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같은 해 6월 조선로동당 제4기 9차 전원회의에서 조직이 결정되어 1965년 3월 25일 평양대극장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각 군 단위로 농근맹 조직위원회가 편성되는데 모든 협동농장원은 물론 농장과 관련있는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가맹한다. 현재 맹원 수는 약 130만 명 정도이다.
남쪽의 양대 노총과 북쪽의 조선직업총동맹, 남쪽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북쪽의 농업근로자동맹. 이들은 모두 노동자들, 농민 생활의 든든한 울타리면서 동시에 통일을 위한 소중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한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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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한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아영스

2005. 7. 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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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한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겨레하나 2005-05-21 조회수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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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연재 20회 보기



북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이 다 직장에 나간다.
이런 맞벌이 부부를 북에서는 직장세대라고 부른다.
사회와 집단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남녀평등사회다.
그런데 남쪽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가정에서는 남성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한다는데...
북녘의 한 직장세대의 하루를 상상해봤다.

사진 ▶ 평양의 아침. 아이는 학교로 엄마는 직장으로 사이좋게 길을 나선다.

벌써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 벌써 십여 년 째 어김없이 일어나던 시간인데 오늘은 유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싫은 건 왜일까. 어서 일어나서 아침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계속 내일, 내일 하고 미뤄온 아파트 복도 청소도 오늘은 꼭 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몸이 무겁기만 한지.
세상 모르고 코를 골며 곤하게 자고 있을 세대주(남편)를 생각하자 더욱 일어나기가 싫어지는 걸 보니 오늘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분명 어제 세대주의 괘씸한 행동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직장세대의 하루


평양 의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북녘 여성과학자들. 북에서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하다.
어제는 직장에서 생활총화가 있는 날이었다. 보통은 오후 5시 반이면 퇴근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있는 생활총화날 만큼은 어쩔 수 없이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에 아침부터 세대주에게 단단히 주의를 두었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와서 아이들 숙제도 봐주고 혹 가능하면 아이들과 함께 저녁준비도 좀 해달라고. 아침에만 해도 세대주는 선선히 "그러마"라고 했다.
사실 세대주가 요리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세대주는 요리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니 똑같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직장세대(맞벌이 부부)니 만큼 가끔씩은 세대주가 요리도 해주고 가정 일도 도와주고 하면 좋겠건만 세대주는 부엌에도 잘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세간을 다루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너무도 철저한 사람이다.









처녀총각시절 같은 직장에 있을 때 만나 연애를 할 때는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 3살 위인 세대주는 당시 남들보다 항상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직장 동무들하고의 관계도 참 좋았다. 사람 좋아하고 동무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 그를 은근히 동경하던 마음이 공원이며 극장을 함께 다니다가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결혼 전만 해도 세대주는 요리도 청소도 다 거들어줄 것처럼, 대신 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웬걸.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자 서서히 세대주는 남성이 할 일, 여성이 할 일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가루탄을 받아다 구멍탄을 찍는 일이라든가 물을 길어다주는 일, 무거운 쌀자루를 날라다주거나 김장을 할 때 배추를 타다주고 하는 등 무겁거나 힘든 일을 할 때면 으레 남성이 하는 일인 줄 알고 곧잘 거들어 주지만 청소며 설거지와 같은 일에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으려 들기 일쑤다.

국제부녀절은 남편이 요리하는 날


지난 3월 8일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중앙보고회가 개최되었다.
남녀평등권법령이 생긴 지도 벌써 57년. 사회적으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거나 더 많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졌다. 여성은 현재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사회의 모든 직책에 들어가 있다. 1945년 11월 18일 창립된 조선민주녀성동맹은 조선로동당 다음에 무어진(결성된) 첫 사회단체이고 이듬해 7월 30일에는 여성과 남성이 똑같은 권리를 행사하도록 한 남녀평등권법령도 발표됐다. 요즘에는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표된 7월 30일을 기려 부인에게 선물을 하는 남편들도 많아졌다.
여성이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1994년 말 현재 전체 산업체 노동인력의 53.8%가 여성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산전산후 휴가제라든가 보육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
나 역시 큰아들 진혁이를 낳아서 처음 아이를 일주일씩 주탁아소에 맡길 때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탁아소에서 아이를 잘 돌봐주는 데다가 아이가 동무도 사귀고 익숙해지는 걸 보면서 다시 직장생활에 매진할 수 있었다. 가정부인으로서 역할도 역할이지만 사회에서 자기 맡은 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기본이고 사회와 집단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속에서 안해를 대신해 요리하는 일에 익숙해진 남편들도 늘고, 함께 부엌에 들어가 안해의 일손을 돕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우리 세대주는 여전히 21세기가 아니라 봉건시대에 사는 사람 같다. 물론 세대주가 여성이라고 나를 무시한다거나 남성과 여성이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남성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든가 가정 일은 여성의 일이라든가 하는 생각만큼은 쉽게 바뀌지가 않는 모양이다.
최근 3월 8일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이면 남편이 부인을 위해 요리를 장만하는 것이 새로운 풍조로 생겨났다. 세대주도 다들 그러는 날이니 만큼 그날 만큼은 자기가 요리를 하겠다며 부엌에 들어가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음식을 식탁에 내놓는 것은 아니다. 올해에도 부엌에 들어가 3시간이나 아이들과 나를 기다리게 하더니 겨우 들고 나온 것이 계란볶음이었다.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두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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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두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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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7. 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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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두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겨레하나 2005-06-04 조회수 :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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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연재 21회 보기



북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이 다 직장에 나간다.
이런 맞벌이 부부를 북에서는 직장세대라고 부른다.
사회와 집단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남녀평등사회다.
그런데 남쪽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가정에서는 남성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한다는데...
북녘의 한 직장세대의 하루를 상상해봤다.

사진 ▶ 평양의 아침. 아이는 학교로 엄마는 직장으로 사이좋게 길을 나선다.

매일 상점에 들려 저녁식사 재료 사
어제는 생활총화를 끝내고 평소보다 2시간 가까이 늦어 집에 돌아왔다. 벌써 가족의 저녁식사 시간인 8시가 조금 넘었다. 피곤하고 허기가 지기도 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혼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큰아들이 배고프다고 빨리 저녁식사 준비를 해 달라고 투정부터 부렸다. 세대주는 보이지 않았다. 손풍금을 유난히 잘 켜는 딸아이는 학생소년궁전으로 음악 과외학습을 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평소에 가정일은 거의 다 내가 하는데 그러자면 세대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데 겨우 일주일에 하루 일찍 들어와서 아이들 봐주고 하는 것도 못해주나 싶었다. 더구나 요즘 중학교 6학년인 아들은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 아버지와의 대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대학 진학, 직장, 군대 중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아들은 아버지의 조언을 얻고 싶어했다. 그런데도 요즘 세대주는 계속 퇴근이 늦어 가족이 한 식탁에 모여앉는 유일한 시간인 저녁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고 보니 부엌에 마땅한 음식재료도 없다. 퇴근만 일찍 했으면 상점에 들렸다 왔을 텐데.
나는 별 일이 없으면 항상 5시 반쯤 퇴근하면 바로 버스를 타고 김일성광장 가까이 있는 대동문식료상점이나 대동문과일남새상점에 들려 식료품을 사면서 저녁식사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장을 보는 일에서부터 직장인으로서 일이 끝나자마자 가정부인으로서 일과가 시작되는 셈이다. 상점의 진열장에는 고기, 닭알, 두부 등의 식료품들과 함께 순대와 같은 가공식품들도 진열되어 있지만 나는 가능하면 가공식품은 사지 않는다. 다소 품이 들고 시간도 걸리지만 아이들과 세대주에게 손맛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하고 싶기도 하고 원재료를 사는 것이 가격도 훨씬 절약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식료품을 사 가지고 집에 들어오면 7시. 그때부터 정신없이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가정 일하랴, 직장 생활하랴, 직장세대의 부인은 정말 바쁘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면서 부엌과 복도를 청소하고 또 세대주와 아이들이 입고 갈 옷도 챙겨야 한다.
아이들은 보통 6시 반쯤 일어난다. 그러면 세대주와 함께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반쯤 세대주는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로 제 각각 먼저 떠난다. 내가 직장으로 출발하는 시간은 아침 8시 반쯤.
아침에 가장 신경 쓰이는 가정일 중의 하나가 바로 점심곽밥(도시락)을 싸는 일이다. 아이들 둘, 세대주, 내 것까지 아침마다 곽밥 네 개를 싸려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밥에, 부식에 머리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점심시간이면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곽밥을 꺼내놓고 같이 먹기 때문에 서로의 요리 솜씨를 비교 당하게 마련이다. 같은 재료로도 얼마나 맛깔스럽게 다양한 부식을 만들었는지 얼마나 정성이 담겨있는지 등등.
세대주는 내가 특별히 정성들여 곽밥을 준비한 날이면 저녁에 돌아와 "오늘도 합격이야" 하면서 싱글벙글한다. 아마도 세대주의 직장에서는 자기들끼리 모여 곽밥을 비교하면서 합격, 불합격을 가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세대주는 일주일에 다섯 번, 매 번 다른 부식에 다른 곽밥을 싼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에는 신경이 미치지 않는가 보다.

동무 좋아하는 절반만 안해 생각해주었으면


아무리 가정일을 돕지 않는 남편이라도 김장할 때 배추나르기는 남자들 몫이다.
그렇게 직장에서 곽밥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마친 후 5시 반에 퇴근하면 다시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세대주가 보통 7시 반이면 돌아오기 때문에 가족의 저녁식사 시간은 8시로 정해져 있다. 과외학습이 있는 날도 아이들은 대개 이 시간이면 집에 들어와 있다. 하지만 식사를 다 준비해놓고 난 다음에도 세대주는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몇 시에 들어온다, 조금 늦는다 이런 전화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기다리다 못해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상을 물리고 난 다음에야 한 두 잔 마신 술에 얼굴이 벌개진 세대주가 들어와 "왜 전화 안 했냐"고 다그치면 "술집에 전화가 없었다", "퇴근길에 들린 동무 집에 전화가 없었다"는 등 변명만 늘어놓는다. 고생하는 안해 생각을 자기 동무 생각하는 반만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사람 좋아하고 주위에 사람 많은 세대주가 연애할 때는 멋있어 보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흠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동무들과 어울려 술 한잔을 하고 들어오거나 아예 밤늦게 동무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세대주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면 식사나 술을 준비해주어야 한다.
세대주는 어제도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왔다. 아침에 일찍 들어와 달라고 했던 내 부탁은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9시 넘어 친구들을 데려와서는 술상까지 봐달라 했다. 친구들 앞에서 세대주에게 뭐라 할 수는 없고 저녁식사 부식거리도 마땅치 않아 고생했는데 술안주는 또 뭐로 내놓나. 부엌을 온통 뒤져 이것저것 마련해 술상을 봐주고는 먼저 아이들과 함께 옆방에서 잠이 들었다.
어제 일을 다시 떠올리니 오늘 또 직장일 하랴, 가정일 하랴 바쁜 하루 보낼 생각이 막막해지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대주하고의 의견싸움이야 계속 이야기하면서 풀어갈 일이고 사회에서 직장에서 내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것도 내게 주어진 소중한 몫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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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7. 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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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세번째 이야기 : 직장세대

겨레하나 2005-06-11 조회수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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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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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2회 보기



북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이 다 직장에 나간다.
이런 맞벌이 부부를 북에서는 직장세대라고 부른다.
사회와 집단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남녀평등사회다.
그런데 남쪽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가정에서는 남성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한다는데...
북녘의 한 직장세대의 하루를 상상해봤다.

사진 ▶ 평양의 아침. 아이는 학교로 엄마는 직장으로 사이좋게 길을 나선다.

조직생활 유지의 근간 : 생활총화


북 직장의 회의 모습
북의 주민들은 평소 "자신의 잘못을 허심하게(딴 생각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비판하고 고쳐나가겠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북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석해야 하는 생활총화에서 이 말은 단골로 등장한다. 생활총화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업무수행과 사생활 등에서 나타난 잘못을 비판하는 이른바 자아비판 및 상호 비판 회의다.
북 사회과학 출판사가 펴낸 《조선말대사전》은 '총화'를 "진행 중인 사업이나 생활에 대해 그 결과를 분석하고 결속 지으며 앞으로의 사업과 생활에 도움이 될 경험과 교훈을 찾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보통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생활총화에서는 조직원들이 모여서 한사람씩 차례대로 일어나 먼저 자아비판을 한 다음 상호비판을 한다. 특별히 예술인들은 이틀마다 생활총화를 하며, 외국과 접촉이 잦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매일 생활총화를 하기도 한다.
생활총화는 북 조직생활을 유지시키는 근간(根幹)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북의 모든 주민들은 1개 이상의 조직에 가입돼 있다. 가정과 직장생활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2~3시간씩 일주일에 4~5일은 조직생활을 한다. 김일성 주석은 이같은 조직생활의 당위성에 대해 "조직생활은 사상단련의 용광로이며 혁명적 교양의 학교"라고 규정하고 "조직생활을 떠나서는 정치적 생명도 그리고 혁명성도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5세까지의 어린이들은 유치원과 탁아소에서 생활하며 7세(소학교 2학년)부터 13세(중학교 3학년)까지의 소년소녀들은 의무적으로 소년단에 가입한다. 사회단체들 중 직업총동맹에는 남녀노동자와 사무원들만이 가입하며, 여성동맹에는 직장이 없이 가사일만 하는 여성들, 청년동맹에는 14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들, 농업근로자동맹에는 농민들이 각각 가입한다. 소년단 생활을 끝내고 일단 청년동맹에 가입하면 누구나 이 기간 중에 노동당원(현재 약 300만 명으로 추산)이 되려고 애를 쓴다. 모든 단체들은 의무적으로 가입하지만 당 조직만은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각 직장이나 가정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조직생활에 의무적으로 참가한다. 평균적으로 보면 하루 2~3시간씩 1주일에 4~5일은 직장 퇴근 후에 조직생활을 한다. 이같은 조직생활을 유지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생활총화인 셈이다.
주민들은 생활총화시간에 상당히 긴장한다고 한다. 각 조직의 위원장은 생활총화 시간에 드러난 개인의 비판기록을 문서로 작성해 상부에 보고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위원장들은 매 분기나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생활총화에 나타난 개인기록을 참고해 거기에 자신의 평가를 붙여 상부조직에 보고한다. 만일 이런 일들이 두려워 총화시간에 참석하지 않으면 나중에 개인적으로 다시 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이 임의로 결석할 수 없다.
또 생활총화에서는 각 조직원들에게 분공(分工)이 주어진다. 분공이란 당 조직이나 근로단체가 개개인에게 업무를 분담하는 것, 또는 할당한 업무를 말한다. 북의 모든 주민은 노동당이나 근로단체의 생활총화를 통해 분공을 받아 수행한다. 분공은 주로 연, 분기, 월, 주 생활총화에서 할당되며 6개월 이상 고정적으로 맡겨지는 분공은 '고정분공', 주 또는 월 등 짧은 시일 안에 해야 할 분공은 '임시분공'이라고 한다.
학생들의 경우 극히 드물지만 '집단적 따돌림' 현상도 생활총화를 통해 대책을 세워 해결한다. 수업시간이나 작업시간에 조는 행위, 금지구역에서의 흡연 등도 단골 비판대상이다. 북의 소설에 보면 "직장 업무를 태공한(태만히 한) 것 때문에 주 생활총화에서 여러 사람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는 내용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함경북도 라남탄광연합기업소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궐기모임을 하고 있다.
주 생활총화는 다시 월 생활총화, 분기 생활총화로 이어지고 연말에 결산 총화를 한다. 해마다 12월 25~30일경이면 북 전역은 연말총화와 송년회 분위기에 빠져든다. 송년회를 갖기 전에 연말 총화부터 치른다. 연말총화는 주·월·분기 생활총화보다 규모가 크고 준비도 철저하다. 청년동맹, 직업동맹, 농근맹 등 각 근로단체에서는 간부 선출도 연말총화 때 한다.
기업소의 경우 연말총화에서 당비서는 기업소의 1년간의 성과와 문제점, 향후 과제 등을 제시하며 부기장(회계책임자)은 기업소의 계획성과와 예산집행내역에 대해 설명한다. 연말총화의 핵심은 태만자들에 대한 비판사업이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토론준비를 시킨다. 비판할 내용을 미리 당비서가 점검하기도 한다. 비판받는 사람들은 앞으로 불려나가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되고 눈물을 흘리며 자아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어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는 당비서의 격려가 있게 된다.
연말총화 마지막에 실시되는 각급 단체 간부 선출은 분위기가 사뭇 뜨겁다. 전에는 사실상 임명제였으나 요즘은 동료들의 신망이 두텁지 못하면 당선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말 결산총화는 전에는 7~8시간 씩 걸렸으나 최근에는 3~4시간으로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북 주민들이 생활총화에 대해 드러내놓고 불평하는 일은 별로 없다. "다른 조직에서는 생활총화를 짧게 하는데 왜 우리조직만 길게 하느냐"는 정도의 불만이 제기되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사는 모습이 다 똑같듯이 주민들은 상호비판할 때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비판을 받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저 형식적인 비판을 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서로 단점을 들추면서 비판을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악감정을 가지게되는 경우도 일어난다. 북의 신문에는 한 청년동맹원이 생활총화 회의에서 자신의 결함을 지적한 상대의 충고를 두고 고깝게 여기면서 잘못을 시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대의 약점을 들먹이며 반격한 사례가 실리기도 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북은 "호상(상호)비판을 두려워하거나, 비판하는 경우도 매우 조심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올바른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간의 개인감정·선입견 등이 크게 작용한다는 판단아래 이를 시정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청년동맹의 경우 "동지를 아끼고 사랑하며 동지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나타난 잘못을 제때 바로 잡아준 모범사례들을 교양하는 사업"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남쪽에서 주간단위 자아비판과 상호비판은 굉장히 낯설고, 하기도 불가능하지만 북 주민들에게 생활총화는 조직생활과 함께 반세기 이상 지속되면서 삶의 한 부분으로 정착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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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네번째 이야기 : 농민

아영스

2005. 7. 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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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네번째 이야기 : 농민

겨레하나 2005-06-18 조회수 :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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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연재 23회 보기



개천절 남북공동행사를 맞아
평양을 찾았던 2003년 10월 초,
북녘의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올 여름 북녘은 태풍 매미의 피해는 적었지만
일조량이 시원치 않아 벼이삭이 그렇게 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북녘의 농촌 풍경,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진 ▶ 2001년 10월 금강산 농민대회에 참가한 북쪽 농민이 태평소를 불고 있다.


북녘에서 농업활동은 알려진 것처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협동농장의 농장원은 보통 500~600명 정도인데 많은 곳은 1000명에 이르기도 하며 리(마을) 하나가 하나의 협동농장을 구성하기도 한다.
협동농장과 조금 다른 것으로 국영농장도 있다.
리협동농장이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소속이라면 국영농장은 도농촌경리위원회가 관리하며 도 전체의 농업에 관련된 일을 맡는다. 1개 농장은 5~8개의 마을로 나뉘어져 그 마을을 중심으로 작업반이 구성되어 있고 각 작업반은 다시 7~8개의 분조로 나뉜다. 이 1개의 분조가 농사짓는 땅 넓이는 보통 10정보(1정보는 3000평)가 넘기 때문에 1개 작업반은 분조의 수에 따라 대개 50정보에서 많게는 100정보를 맡아서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협동농장이 리와 같은 하나의 행정단위를 이루기 때문에 각각의 협동농장 내에는 리분주소, 출판물보급소, 리진료소, 이발소, 미용실, 수리점과 같은 편의봉사실, 기계화작업반, 보수반, 철공소, 상점 등이 갖춰져 있다.
협동농장 내에 있는 기계화작업반은 그 인원이 20명 정도로 농지 정리를 할 수 있는 기계를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철공반에서는 농기계를 자체 생산하고 보수반에서는 협동농장 내 인민들의 집을 짓기도 하고 기계도 수리하고 둑 보수 작업도 알아서 한다.
이처럼 하나의 협동농장은 인민들의 필요를 대부분 자체 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자체적으로 하나의 행정단위 이루는 협동농장


협동농장에서 농민들이 이북식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한 마을 단위, 약 100명으로 구성되는 작업반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계화작업반, 철공반, 보수반, 돼지, 양, 염소 등을 키우는 축산반, 채소를 기르는 남새반 등도 있지만 주로는 벼, 강냉이, 감자 농사를 짓는 농산반을 가리킨다.
각 작업반에는 반장, 기술원, 통계원이 있다. 반장은 그 작업반의 생산을 담당하고 통계원은 생산량이나 개인의 로동량만이 아니라 생활도 공수(점수)를 매겨 통계를 낸다. 다시 말해 1개 농장의 총 생산 책임자는 리관리위원장과 기사장이며 농장의 생산담당 대표인 리관리위원장 밑으로 관리부위원장, 작업반장, 분조장의 순서로 이어지고 관리부위원장과 같은 급인 기사장은 그 밑의 기술원들과 함께 농장의 기술을 총지도하는 것이다.
농장원의 하루생활은 일반 노동자의 생활과 거의 비슷하다. 보통 분조별로 작업반 선전실에 모여서 작업지령을 받고 조회를 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데 한여름 새벽부터 김매기를 할 때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 없이 바로 작업터로 가서 일을 한다.
전 농장원이 쉬는 농민의 날은 3월 5일, 그리고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데 반해 농민들은 10일 간격으로 1일, 11일, 21일에 쉬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농민시장도 농민들이 쉬는 날인 매 1일에 열렸다.
한편 농민들의 조직으로는 농업근로자동맹(농근맹)이 있다. 1964년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열린 조선로동당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가 발표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같은 해 6월 조선로동당 제4기 9차 전원회의에서 농업근로자동맹을 조직할 것을 결정했다.


요즘 북은 남쪽과 함께 공동 영농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일포 협동농장과 같이 북 농업의 중심인 협동농장에서 남한 품종의 시험재배가 이루어진 것은 큰 의미라 할 수 있다. 사진은 농사 준비가 한창인 황해도 재령군 김제원 협동농장.
이 결정에 따라 각 군 단위로 농근맹 조직위원회를 편성해 모든 협동농장원은 물론, 농장과 관련있는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입하게 했다. 이에 따라 농근맹에는 협동농장, 국영농장, 국영목장, 군 협동농장 경영위원회, 관개관리소, 농기계제작소, 농기구공장, 자재공급소, 가축위생방역소 등의 노동자, 사무원까지 가입되어 있다.
1965년 3월 25일 평양대극장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한 농근맹은 조선로동당의 외곽단체로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행하고 당과 농업부문의 노동자, 사무원을 연결시키는 인전대 역할을 한다. 맹원수는 창설 당시 230만 명에 이르렀고 지난 1979년에는 약 3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된 바 있으나 1993년 11월 현재 맹원수는 약 130만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북은 식량문제 해결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이의 실현을 위해 농업부문 선진기술 도입, 토지정리, 두벌농사, 종자혁명과 감자농사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북은 해당 지역의 과거 품종배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각 지방의 토양성분과 기후조건에 가장 알맞으면서도 수확고가 높은 여러 가지 품종들을 적절히 배합하는 적지적작(適地適作), 적기적작(適期適作)의 원칙에 따라 품종을 선택하도록 지도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지도사업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지학습반이다. 현지학습반은 현장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북의 독특한 교육형태다. 대표적인 예가 1973년부터 30년간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 평양, 함경남도, 개성 등지에 116개의 현지학습반을 운영해온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으로 이 대학은 올해에만도 22개의 현지학습반을 조직하고 630여 명의 농업근로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정보농업으로 생산량 늘려


올해 신년사에서 북은 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을 농업부문으로 제시하면서 생산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농기계와 농업자재 부족으로 아직도 생산량이 크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 3~4월 지원된 못자리용 비닐이 쓰이고 있는 모습.
이와 함께 농업기계화연구소와 평양농업대학 등에서는 물거름 주는 기계, 무 뽑는 기계, 보습, 써레, 씨뿌림 장치가 장착돼 있어 써레질과 씨뿌리기 등을 단번에 진행할 수 있어 두벌농사에 적합한 농기계인 종합토양관리기계 등 창의적이고 실리적인 새 농기계를 개발 보급하는데 힘쓰고 있다.
지난 2000년 말부터 농업과학원의 지원을 받아 량강도의 대홍단군, 백암군, 삼지연군 등에 무바이러스 씨감자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감자조직배양공장을 잇달아 건설하는 등 감자농사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백암군에는 올해 들어서만 60여 종 5000여 점의 트랙터 부속품과 40여 종 4만여 점의 각종 영농자재가 전달되는 등 백암군 감자농사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또 북녘에서는 추위에 강하고 생육기일이 짧으면서도 소출이 비교적 높은 밀, 보리의 특성을 이용해 매년 봄과 가을에 두벌농사(이모작 영농)를 하고 있으며 두벌농사 면적을 더욱 확대해 곡물증산에 힘을 쏟고 있다. 북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올해 초 "당의 두벌농사 방침은 우리나라에서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완전히 풀 수 있게 하는 가장 정당한 방침"이라며 "두벌농사를 하는 것은 새 땅을 얻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북녘의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황해남도 연백평야에서는 지난해 가을에 3000 정보의 밀, 보리 농사를 지은 데 이어 올 봄에도 최고 수준의 면적에 밀과 보리를 심어 많은 수확을 냈다고 한다.


식량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농업용 기자재와 비료지원은 반드시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진은 지난 4월 울산에서 진행된 비료 지원 모습.
한편 북은 2007년까지 식량 생산량을 800만 t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농업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북은 시범적으로 안악, 은천, 재령, 신천군 등 황해남도 4개 군에 컴퓨터를 이용해 모내기를 하는 등 정보농업을 도입했다. 북이 말하는 정보농업의 대책은 작물배치 개선, 품종배치 개선, 영농공정 개선, 토양에 맞는 두벌농사, 화학비료의 효율적 이용, 지력 제고, 농촌 과학기술보급체계 확립, 생산계획 수정을 통한 농민 노동의욕 제고 등 8가지다.
이를 위해 농업과학원 컴퓨터 분야를 비롯한 대학, 연구기관 과학자들과 생태환경보호부문, 산림부문, 국토계획부문의 전문가 30여 명이 집결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북은 쌀과 옥수수 위주의 영농에서 벗어나 감자, 고구마, 콩 등 생산성 높은 작물의 경작을 적극 권장, 재배작물의 다양화를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토질, 기후 등 영농 요인에 대한 분석작업을 시작했다.
이 '정보농업'을 위해 북은 벌써 지력과 기후조건을 입력하면 볍씨의 파종날짜와 모내는 시기를 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기르기 프로그램 '봄노을'과 언제 얼마나 수확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농작물생육 예보프로그램 '포전길'을 개발했다. 각 지방별로 특수식물 재배단지를 조성해 그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생산하는 것도 북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농업 정책의 하나다.
황주군 초물 단지, 통천군 조피나무 단지, 옹진군 귤나무 단지, 사리원 포도나무 단지, 김형권군 사과나무 단지, 백두산 일대의 들쭉나무 단지 등 북 전역에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비교적 규모가 큰 특수식물 재배단지가 약 10여 곳에 조성돼 있다. 가을과 겨울철 시민들에게 군고구마를 판매하기 위해 평양시 강남, 강동, 상원군과 사동, 력포구역 등의 협동농장에서 고구마 경작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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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7. 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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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 농민

겨레하나 2005-06-28 조회수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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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연재 24회 보기




개천절 남북공동행사를 맞아
평양을 찾았던 2003년 10월 초,
북녘의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올 여름 북녘은 태풍 매미의 피해는 적었지만
일조량이 시원치 않아 벼이삭이 그렇게 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북녘의 농촌 풍경,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진 ▶ 2001년 10월 금강산 농민대회에 참가한 북쪽 농민이 태평소를 불고 있다.


토지정리, 관개수로 개설로 농업 활성화


토지정리를 위해 측량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
이와 함께 최근 북은 전역에서 토지정리와 새 농촌마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1998년 9월 강원도를 시작으로 1999년 평안북도, 2000년 황해남도에서 각각 토지정리 사업을 완료했으며 2002년 3월부터는 평양시, 남포시, 평안남도 토지정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평양시, 남포시, 평안남도에서 정리할 토지는 총 9만 정보에 이른다. 이미 황해남도는 2000년 10월부터 1, 2단계에 걸쳐 작은 규모의 논과 밭을 대규모로 규격화하는 토지정리사업을 전개해 1년 6개월만에 모두 10만 정보의 농경지를 새로 조성했으며 55~60가구의 주택이 들어선 130여 개의 새 농촌마을을 세웠다.
북은 농경지를 정리하면서 논, 밭이나 도로 주변의 낡은 집들을 없애고 산기슭에 농촌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해 농촌지역에 새로 건설, 공급된 주택만 해도 11만 3600여 채라고 한다. 이 같은 조치는 농촌 주택단지의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농경지 곳곳에 있는 주택을 없앰으로써 토지정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경지면적을 확충하려는 정책에 따른 것이다.
토지정리 사업이 완료되면 새 농지에 대한 땅심높이기 작업에 들어간다. 이 작업은 농업과학원 토양학연구소에서 맡고 있다. 연구소는 토지정리를 마친 각 지역의 토양을 채취해 질소, 인, 칼륨 등의 함량을 분석하고 이를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해 이 자료를 토대로 비료 양과 물대기 등을 조절하고 있다.


북의 농민들이 새로 건설된 문화주택을 둘러 보고 있다.
토지정리 사업과 함께 다양한 인공수로 건설 및 관개시설 개선도 농업 활성화를 위해 북에서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이다. 2003년 4월에는 평안남도 개천시 대각리에서 순천시 등을 거쳐 남포시 강서구역의 태성호를 잇는 총 연장 150여 km의 자연흐름식 물길인 개천-태성호 인공수로를 개통했다. 이로 인해 서해 곡창 10만 정보의 논밭에 풍부한 농업용수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3년 1월에는 황해남도 강령간석지 제방저수공사가 완공돼 관개용수로 이용할 수 없었던 저수지의 물을 강령-옹진 지구의 1만1000여 정보의 논밭에 원만하게 대줄 수 있게 됐으며 동시에 1000여 정보의 새로운 땅을 확보했다.
또 평안북도 관개용수 확보를 위한 백마-철길 물길도 건설 중인데 이 물길이 완공되면 수만㎾h의 전력과 많은 양수설비를 쓰지 않고도 평안북도 내 4만6000여 정보의 농경지에 물을 충분히 댈 수 있어 농업생산을 더욱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7·1경제조치 이후 높아진 농업 생산량


위) 통일거리시장 안 남새(야채) 판매대의 모습. 통일거리시장은 평양 각 지역에서 온 주민들로 항상 부쩍이고 있다고 한다.
아래) 평양 락랑구역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거리시장 입구.
북에서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 체제로의 과도기에 발생하는 사회주의적 소유의 한 형태, 다시 말해 사적 소유로부터 전인민적 소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소유형태를 '협동적 소유'로 보고 있다. 이 협동적 소유의 대표적인 분야가 농업이며 협동농장이 그 전형적인 모델이다.
이렇게 협동농장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지난해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시행된 이후 각 협동농장에서도 생산량과 결산분배 등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에 쌀 1kg을 80전에 수매, 8전에 판매하던 것을 7·1경제조치 이후 40원에 수매해 44원에 판매하는 등 쌀 수매가격을 대폭 높여 농민들에게 많은 분배몫이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농장원들의 노력과 열의가 높아진 점이다.
이에 따라 협동농장 생산실적과 분배량이 크게 늘어났다. 생활비 및 가격의 조정이 이뤄지고 일한 만큼 분배받게 되자 가족 단위로 30만원 이상의 돈을 받는 농장원들도 나오게 됐다고 한다. 부업 차원에서 한때 유행했던 텃밭 경작도 줄어들었다. 과거 15명 내외이던 농업생산의 최소단위인 분조 규모도 7~8명 단위로 축소되고 가족단위 분조를 도입했으며 생산물의 70%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지역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올해 북의 2003년도 양곡회계연도(2002.11~2003.10) 식량수요량은 632만t(남측 통일부 추산)에 이르고 있으나 확보가능한 식량은 489만 t에 불과해 143만 t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하지만 북은 다양한 농사기술 혁신과 농업구조개선 노력으로 식량난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 아래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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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선인출판사)
글/ 사진 : 민족21

1년 동안 자체 월간지인 <민족21>에 연재한 내용을 뼈대로 이 책을 엮어낸 [민족21]은 "북녘 사회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보십시오."로 시작하는 책의 머리말에서 북녘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가장 완벽한 ‘북녘 인민 생활사’는 직접 만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며 기획 연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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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남북공동행사를 맞아
평양을 찾았던 2003년 10월 초,
북녘의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올 여름 북녘은 태풍 매미의 피해는 적었지만
일조량이 시원치 않아 벼이삭이 그렇게 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북녘의 농촌 풍경,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진 ▶ 2001년 10월 금강산 농민대회에 참가한 북쪽 농민이 태평소를 불고 있다.


금요노동


3대헌장기념탑 건설현장에 노동지원을 나온 사람들이 잠시 오락시간을 갖고 있다.
1998년 3월 북을 방문한 한 재미동포는 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부총리급, 2003년 10월 사망)을 만났다. 그런데 그는 작업복 차림이었다. 금요노동을 하다가 만나자고 해서 급히 왔다고 했다. 그 재미동포는 "아니 최고위 간부가 업무는 보지 않고 웬 노동인가"라며 '참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에서 간부들의 '금요노동'은 이상한 현상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어느 간부나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업무가 있거나 해외에서 손님이 찾아온 경우 등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금요노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소속 당회의에서 '건달'(태만)했다고 비판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금요노동'은 각 기관 간부들과 사무원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업무를 전폐하고 건설장·공장·협동농장 등에 나가 의무적으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매주 금요일에 실시한다고 하여 통상 '금요노동'이라고 부른다. 금요노동의 현장은 주로 국가적 건설의 현장이거나 농촌 지원, 자체의 생산 현장 등이다. 노동의 종류도 직접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 예술인들처럼 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것 등 다양하다.
북의 조선중앙TV는 2001년 첫 금요일인 1월 5일에 내각의 국가계획위원회, 농업성, 수산성 등의 간부들과 90여 개의 성·중앙기관 정무원(공무원)들이 평양시내에 건설 중인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 신년 첫 '금요노동'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아침 일찍 작업도구를 갖고 건설장에 출근해 기념탑 주변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조선중앙TV는 4월 27일에도 금요일 내각의 성·중앙기관 일군들이 평양 청춘거리 체육촌에 자리잡고 있는 활쏘기경기장 건설장에서 도로닦기 작업과 운동장 평토작업, 둑쌓기 공사를 벌이는 장면을 방영했다. 금요노동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인들도 금요노동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인민군은 매월 둘째, 넷째주 금요일에 인민군 총참모부 국장급, 총정치국 부국장 이하 장령(장성) 및 군관(장교)들이 영농지원이나 건설공사 지원활동을 벌이는 '금요노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북에서는 간부들도 노동현장과 농촌현장에서 함께 일한다
북은 왜 업무에 바쁜 고위간부들까지 노동현장에 투입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의 의무는 가장 중요한 국민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이점에서 북도 마찬가지이다.
북에서 노동은 개인적인 생활수단이기 이전에 '모든 사람들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북은 노동이 "물질적·문화적 재부(財富)를 창조하게 하고 인간에 행복을 주면서 사회주의 혁명건설을 완수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 이에 따라 북의 당·정·군의 고위 간부들과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사무원들도 의무적으로 노동에 참가한다. 한마디로 북은 모든 사람들이 노동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금요노동은 1970년대 후반에 매주 1회씩 의무적으로 노동에 참여하도록 한데서 시작됐다. 또한 1959년 3월 <내각결정 18호>로 사회 의무노동제를 공고한 이후 학생, 사무원들은 매년 일정한 시간 동안 의무노동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경우 연 10주, 중학교 고등반학생은 8주, 중등반학생은 4주, 그리고 사무원은 4~6주간 의무노동에 참가한다.
특히 농번기에는 북 전역에서 농촌지원 노동이 대대적으로 실시된다. 그래서 5월이면 북 전역의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 농장에서 생활한다. 몸이 아프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농촌지원에서 빠질 수 없다. 농촌지원은 봄과 가을 두 차례 실시된다.
봄철 농촌지원은 지방마다 다소 다르지만 대개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이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5월이면 도시는 한산해지고 대신 농촌은 학생들로 시끌벅적해진다. 평양시를 비롯한 대도시 학생들은 주변 농장에, 각 시·군의 학생들은 그 지역 농촌으로 지원나간다. 봄철 북의 농촌 들녘은 남녀 학생들과 방송차에서 울리는 노랫소리와 선전선동원들의 목소리로 뒤덮힌다.
학생들이 농장에서 해야 할 일은 간단치가 않다. 개인마다 하루 작업량이 정해져 있어 대충 넘길 수가 없다. 특히 평양에서 곱게 자란 학생들에게는 무척 고생이 되지만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 농촌지원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은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살이 쏙 빠진다. 학생들이 돌아오는 6월에는 평양 최대의 목욕탕을 갖춘 창광원이 '농촌 때'를 벗기려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북 최고시인 김철의 <금요로동> 중에서

그처럼 어렵던 나날에
내 이 거리를 위해 벽돌 한 장 쌓지 못했고
온 세상이 쳐다보는 이 거리의 창문들에
내 아직 유리 한 장 끼운 일 없었기에

깨끗이 빤 작업복 한벌
려행가방 깊숙이 넣고 왔더니
천만다행이랄가
나에게도 일감이 차례졌구려

나는 큰 대회의 대표도
출장원도 아닌 보통려행자,
나는 로력영웅, 혁신자도 아닌
평범한 광부

40평생 짊어진 마음의 빚을
하루의 땀으로야 어찌 다 갚겠소만
대극장 배우동무, 정무원의 국장동지
힘자라는껏 듬뿍듬뿍 담아주시오
북의 언론들은 또한 일요일이나 휴일에도 큰 규모의 건설공사 현장에 자발적으로 노동지원을 가는 경우를 자주 미담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의무노동이나 지원노동에는 아무런 보수가 없다.
금요노동과 지원노동은 북의 부족한 노동력 보충을 위한 동원수단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역할은 간부들과 주민들의 거리감을 없애고,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없애는데 기능한다는 점이다. 북은 모든 주민들의 의무노동 참여가 당면한 노동력 부족 문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상과 부르주아적 관념의 척결', 경제난 극복, '인민대중의 단결력 강화' 등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북은 간부들의 경우 의무노동이 "간부들과 군중들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간부들의 훌륭한 사상과 사업작풍을 유지하는 데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도와 대중의 단결과 함께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의 작풍을 없애기 위한 중요한 방도로 좋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TV에서 접하는 일부 북 고위 간부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 거친 손은 다름아닌 금요노동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사회주의권 붕괴와 잇따른 자연재해로 식량난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당시에는 거의 모든 간부들이 농촌과 건설현장에서 장기간 근로자들과 함께 힘든 육체노동을 수행했다고 한다.
북이 지속적으로 '수령·당·대중의 일심단결'에 기초한 집단주의 사회를 주창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고위 간부들이 직접 근로자들과 함께 육체노동에 참여함으로써 근로자들에게 신뢰를 주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금요노동에 대한 기피현상이 발생하고, 형식적으로 금요노동을 수행하는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요노동 자체가 북녘 사회에서 간부들과 대중들의 거리감을 줄이고 상하간의 일치감을 조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