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4, 2018

Park Yuha <허스토리>라는 영화는 이른바 関釜재판,



(1) Park Yuha










Park Yuha

9 September at 18:35 ·



나온 지 좀 되었지만, IPTV에서도 하기에 써 둔다.
<허스토리>라는 영화는 이른바 関釜재판, 釜山의 관계자들이 (지원자, 위안부할머니, 정신대할머니) 下関를 왕복하며 싸웠던 재판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재판을 지원한 지원자는 일본에도 있었다.

영화에는 재일교포 변호사만 부각되고 있지만, 후쿠오카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오랜 세월을 할머니들을 맞아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며 지원한 하나후사부부야말로 관부재판 하면 빼 넣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역. 그런데 영화엔 고작 처음 일본 땅에 내렸을 때 “하나후사입니다”라면서 맞아 준 장면 말고는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이 영화가 예고편 당시엔 “관부재판”이라는 제목이다가 나중에 제목을 바꾼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 완벽한 삭제가 서글펐다.
물론 나역시 사재를 털어 피해자들을 지원한 김문숙회장님을 존경한다. 하지만 일본 측 지원자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에도 관계자들을 취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비용문제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또하나, 이 재판의 정식이름은
<釜山従軍慰安婦・女子勤労挺身隊公式謝罪等請求訴訟「関釜裁判」>.
즉 정신대 할머니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이 같이 싸운 싸움이다. 그런데 영화는 위안부할머니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내용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나후사 부부는 이제는 운동전선에서 물러났고 홈페이지만 관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지원했던 할머니들을 만나러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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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Yesterday at 15:31 ·


<허스토리>에 대한 일본인 지원자들의 항의

페이스북을 쉬고 있었는데, 관부재판을 오랜 세월 지원해 왔던 후쿠오카의 일본분들이 영화 <허스토리>에 대한 항의문을 발표했기에 오랫만에 씁니다. 저도 얼마 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이 영화가 역사왜곡을 했다는 항의입니다. 이 모임의 대표는 저도 잘 아는 노부부인데, 그저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이런 지적은 그동안 별로 나오지 않았지만, 더 기탄없이 지적하고 반성하고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언론사에도 보낸다고 하니, 기자님들 특히 주목 해 주세요. 또, 이 영화 관계자들 아시는 분들은 좀 알려주세요. 감독과 대화하고 싶답니다.


—————
<영화 『허스토리』의 제작자에게 항의한다!>

우리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전후 책임을 묻고・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회원들입니다.
이 영화는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실화에 바탕한 영화라고 선전했는데, 변호사도 지원모임도 취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고들조차 취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경악했고, 분노와 슬픔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1] 원고들의 바램과 2] 지원모임의 바램이 무시되고 왜곡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부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측이 함께 원고로서 임했던 재판입니다. 열 분의 원고중 일곱분이 근로정신대피해자입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피해가 한국사회에서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고독하게 투쟁해야 했습니다. 정신대가 곧 「위안부」라는 한국사회의 기존 인식 속에서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편견의 눈초리를 받으며 싸워 왔고, 이제 겨우 그런 차이와 근로정신대의 피해실태가 인식되게 된 시점에서 그간의 편견을 증폭시키는 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근로정신대의 실태를 관부재판에서 지워 버린 것은 범죄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위안부」 원고들의 피해실태에 관해서도 증언기록이 존재하는데 왜 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몇몇 피해자들의 경험을 짜집기해서 과다하게 각색한 걸까요. 이러한 제작자세로 보건대, 피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좋다는 식의 상업주의에 감독이 사로잡혀, 피해자의 고통에 귀기울이는 작업은 하지 않고 제작한 것은 아닌가 싶고, 감독의 불성실함과 태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최고재판소(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며 시모노세키판결을 내렸던 재판관들의 성의와 용기에 대한 헤아림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절대로 픽션화해서는 안되는, 진실이라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바로, 원고인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법정에서 호소한 「피해사실」입니다.

영화 속에서, 후지코시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어 「위안부」가 된 것으로 설정된 분은, 이 재판 원고였던 박SO할머니입니다. 이분은 98년 당시 시모노세키판결얘기가 한국에 보도되면서, 지역사회와 교회 사람들로부터 「위안부였던 거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창피하니까 재판은 하지 말아요!」라는 말로 가족들이 애원하는 정황 속에서 분노와 슬픔으로 인해 가벼운 뇌경색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훗날 치매 증상을 보이게 된 것은 이때 일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박SO 할머니는 물론 「위안부」가 되지 않았고, 이 분을 정신대에 보낸 것으로 설정된 스기야마선생님은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였으며 박할머니께서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 온 분입니다. 실제로 정신대로 보낸 교사는 6학년때 담임, 그러니까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스기야마선생님과의 후쿠오카에서의 감동적이었던 상봉장면을 완전히 다른 스토리—픽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만약 박SO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분노하고 상처받으셨을까요. 스기야마선생님은 황민화 교육에 관계했던 자신을 깊이 후회하고, 한일간 진정한 우호를 위한 활동에 일생을 바쳐오신 분입니다. 아직 생존중이신 스기야마선생님이 이 영화를 우연히라도 만나는 일이 없기를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 우리는 원고분들께 지원모임회원들의 집 혹은 교회에서 숙박하실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곳에서 재판관련 회의를 했고 할머니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노래도 불렀고 춤도 추었습니다. 친해지면서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고민을 토로하실 때도 있었고, 그러면서 우리는 피해자들이 입은 깊은 상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은, 원고들과 지원자들간의 상호신뢰와 사랑과 존경심이 깊어지면서 자신을 바꿔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원고들이 여관에서 숙박한 것으로 묘사된 부분과 그곳에서 발생한 일 전부가, 감독의 황당무계한 공상일 뿐입니다.

지원모임이 바랐던 것은, 원고 피해자들과 함께 하며 함께 싸우는 일, 그리고 일본사회에 그녀들의 피해를 알리면서 일본정부를 향해 해결을 촉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일본국내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제작하는 모임」등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전쟁피해진상규명법을 국회에서 성립시키기 위한 활동도 했고,「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배상법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 지역인 후쿠오카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기 위한 선거전등의 활동도, 부족하나마 해 왔습니다. 

재판을 통해 만들어진 원고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우리모임의 역량을 넘는 싸움에까지 우리를 나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고들과 지원자들의 그런 교류와 운동은 전혀 묘사하지 않았고, 당시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우익들의 조롱이나 시민들의 차가운 태도를 여기저기 끼워 넣어 일본사회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재판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원고들의 바램과 명예에 또한번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관부재판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는 않았던 영화 『허스토리』제작자들에게 통렬한 반성을 요구합니다!

2018년 10월 2일
전후 책임을 묻고/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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